이만재 회장 : 태국, 동남아시아 일대 30년 누빈 한국 상사맨 레전드

작성자 : 관리자 날짜 : 2022/10/11 19:07

 이만재 회장 
태국, 동남아시아 일대 30년 누빈 한국 상사맨 레전드

이만재 회장은 1951년생이다. 연세대학교 상대를 졸업하기 직전 한국에서는 종합상사 10위 율산실업에서 첫 직장을 잡는다. 첫 임무는 대만에 우리나라 대추를 판매하는 것이었다고.

“당시는 모든 것들이 처음으로 하는 경험이었습니다. 위에 선배도 아는 것이 별로 없었던 시기라 선배든 후배든 모두가 시쳇말로 ‘맨땅에 헤딩’하던 시기였죠. 제게 주어진 첫 임무는 대만에 우리나라 말린 대추를 선적하는 것이었습니다. 한국 재래시장을 온통 찾아다니며 수십톤의 대추를 확보하여 대만 바이어에게 보내는 임무였습니다.

그 임무에서 전 대만 바이어에게 완벽한 만족을 선사합니다. 배로 대추를 선적하면 가는중에 수분이 말라버립니다. 그렇게 되면 전체 중량이 자연적으로 줄어버리게 되죠. 재래시장 상인 한분이 그 부분에 대해 알려주어 전 미리 여분의 박스를 더 선적하고 박스마다 좀 더 많은 양의 대추를 넣어서 보냈습니다. 그러자 대만 현지에서 여지껏 받아본 수입 대추 중 가장 만족한 결과를 받아보았다는 칭찬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제 종합상사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성공적인 대추 판매 이후 율산실업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이만재 회장은 바로 사주의 부름을 받게 된다. 그의 다음 임무는 해외로 나가 물건을 팔아올 것.

“당시 업무는 주로 사무실에서 전화와 텔렉스를 통해 외국 바이어와 물건 판매가 이뤄지곤 했습니다. 이쪽에서 물건을 소개하고 가격을 알려주고 하는 모든 것들이 텔렉스로 이루어지니 한번 거래가 성사되는 시간이 너무 오래걸렸습니다. 회사 대표가 저를 부르더니 이제 가만히 앉아서 물건을 판매하는 시기는 지났다면서 나가서 팔아오라고 하더군요.”

아시아를 비롯, 중동, 미국 등지를 돌아다니며 자동차용 로켓트 밧데리와 선식용 재료 등을 팔러 다니던 이만재 회장은 1978년 당시에 이미 중동 전지역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가방하나와 물건 샘플을 들고 다니며 현지인들에게 물건을 팔던 그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다.

당시에는 대우실업이었던 (주식회사)대우로 자리를 옮긴 이만재 회장은 철강쪽으로 자리를 잡기 시작한다. 이후 필리핀 마닐라 지사 발령을 받고 그의 해외 지사 생활이 시작된다.


  마닐라 시티. 

“1981년 필리핀 마닐라 지사로 발령받은 후 4년을 지냈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방콕으로 재발령 지시를 받게 된거죠. 당시 마닐라는 우리나라 보다 환경이 더 좋았습니다. 마닐라에는 여러 상사들이 진출해 있었습니다. 현대, 삼성, 쌍용, 효성, 동양화학 등 주재원들이 약 20여명이었고 우리 교민들도 약 300여명이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아시아개발은행 등 우리나라 최고의 인재들이 마닐라에 몰려있던 곳이라 더욱 인상적이었던 마닐라 주재 생활이었습니다.”

마닐라에서 방콕으로 바로 날아온 이만재 회장은 1989년까지 방콕지점장 역할을 수행했다. 역사적인 88 서울올림픽을 방콕에서 보낸 그는 당시 삼성물산, 현대상사, 효성, 엘지상사, 쌍용, 해태상사,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항공, 한국화약 등 지점이 방콕에서 활약했다고 전한다.

“당시에는 태국에 아직 우리 기업들이 진출해 있던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대부분 종합상사 주재원들과 그들의 가족 그리고 일부 일제시대 또는 월남전과 중동붐 이후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태국에 정착한 사람들 일부가 태국에 있는 우리 교민들의 대다수였습니다.

태국 주변국으로 이동하는 경우에도 방콕에서 비자를 발급받아 가야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한국에서 방콕을 찾는 인원들은 항상 많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모두들 비지니스를 위해 방콕을 거점으로 하는 사람들이었던 것이죠.” 이후 한국으로 돌아간 이만재 회장은 수년 후인 1995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프 해외 지사 발령으로 다시금 해외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이때는 해외 지사들의 환경이 이전보다는 많이 달라진 상태였다.


  방콕 old and new.  

“삼성전자가 해외에 진출하기 시작했습니다. 초창기 우리나라가 도약하는 기초적인 시기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당시 말레이시아에서 원유를 구입해 미얀마 등지에 재판매하거나 유엔군으로 참전하는 말레이시아에 군사용 장갑차를 팔기도 했습니다.”

본인의 전성기 때라고 회고하는 이만재 회장은 약 4년간 말레이시아에서 지점장으로 활약하며 대우그룹의 임원으로 승진했다. 하지만 전성기 이후 어려운 시기가 찾아온다.


  이만재 회장. 

“임원으로 돌아온 직후 한국은 IMF를 맞습니다. 본사 상황도 매우 안좋아지기 시작했죠. 그래서 다시금 해외 지사 재구축을 위한 베테랑들의 지사발령 명령이 떨어집니다. 당시 저에게는 네개의 선택권이 있었습니다. 방콕, 싱가폴, 마닐라 그리고 뉴델리.

마닐라를 선택하고 싶었지만 식구들의 반대로 방콕으로 최종 선택되어 다시 돌아온 것이 2000년도였습니다. 89년에 떠났던 방콕을 2000년에 다시 돌아온 것입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듯, 그 사이 많이 달라진 방콕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90년대 후반부터 빠른 속도로 변하기 시작한 방콕은 주재원과 지상사 관계지들의 변화로도 이어졌다. 그 숫자가 훨씬 많아진 것이다.

“교민들의 숫자는 1만여명 정도로 늘어났고 삼성과 LG, 포스코 등 대기업도 진출한 상황이었습니다. 대기업 협력사들은 물론 여행사 관계자들도 상당히 많이 태국에 진출해 있었습니다.

상대적으로 예전에는 해외지사의 주축이었던 상사들은 그 세력이 조금 줄어들었고 삼성전자, LG전자 등이 메인스트림이 된 상황에서 2000년부터 지금까지 23년간 태국에 살고 있습니다.”

IT와 통신 등 새로운 프로젝트들이 신설되고 세상도 변하는 시기였던 2000년대 초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은 사실 힘든 일이었지만 그만큼 새롭게 배울 수 있는 영역을 개척해 나가는 노력은 역시 한국인의 본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항상 일본을 뒤쫓아가는 것이 목표였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초기의 저 역시 일본에서 무엇을 하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일이었습니다. 철강만 하더라도 일본에서 가격들이 발표되면 그때서야 우리 기업들이 움직이는 것입니다. 일본 보다 조금 더 저렴하게, 하지만 품질은 비슷하게.

대부분의 제품들이 일본측에서 우선 선도하고 가격과 품질이 기본이 되고 이후 한국이나 대만 또는 타국가 제품들이 그 뒤를 따르는 형국이었죠.

저는 그런 상황속에서 일본 보다 좀 더 앞설 수 있는 분야가 무엇일까를 연구했습니다. 그동안의 다양한 경험과 나름의 분석으로 내린 결론은 바로 통신분야였습니다. IT와 통신분야는 우리도 해볼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일본을 이겨볼 수 있는 분야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생각은 크게 틀리지 않았습니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항상 일본의 그늘에 가려져 있었던거 같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쌤소나이트 여행가방을 본떠 만든 ‘산소나이트’ 가방을 사우디아라비아 뜨거운 사막을 가로지르며 팔아보겠다 돌아다니다가 잠시 화장실에 들렸다가 나오니 뜨거운 차량 안에서 흐물흐물 녹아버린 경험이나 사전 약속없이 방문한 회사에서 문전박대 당하던 서러움은 아마도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던 우리들의 옛날 이야기일 것입니다.”


  한태상공회의소 웹사이트. 

한태상공회의소 14대와 15대 회장을 역임한 이만재 회장은 설립 초기 상공회의소 상황 역시 잘 기억하고 있다.

“말레이시아에서 주재하고 있을 때에도 대사관쪽에서 상공회의소를 설립하자는 제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태국이나 말레이시아 모두 상황이 그리 평탄치는 않았습니다. 대기업은 물론 파견나온 법인장들 중에서 아무도 회장직을 겸임할 입장이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회사일만으로도 벅찬 사람들이 협회 업무까지 본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대사관의 강한 의지로 한태상공회의소는 다시금 경로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대사관 관계자들의 강한 뒷받침이 없었다면 지금의 한태상공회의소는 없었을 겁니다. 저는 대사관의 뒷받침을 교훈삼아 한태상공회의소 사무국의 역량을 강화하는데 가장 큰 힘을 쏟았습니다. 그렇게 제 임기동안 사무국의 역할이 제자리를 잡아가면서 누가 회장이 되어도 튼튼한 단체가 될 수 있었습니다.

후배들에게 말하고 싶은 한마디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일본도 중국도 그리고 미국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더 이상 그들의 뒤를 따르며 비지니스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태국의 일본차 시장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우리가 더 강하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태국에서의 비지니스는 진입장벽이 높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30년 이상 태국 및 동남아시아를 경험해 본 저로서는 모두 틀린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최대한 태국의 비지니스 룰과 법률을 지켜나가면서 오랜 경험을 쌓으시기 바랍니다. 태국은, 그리고 동남아시아는 단기간에 완성되는 시장이 아닙니다.

편법은 한두번만 통합니다. 편법으로 시작한 비지니스는 끝까지 편법에 발목이 잡히게 마련입니다. 정확하고 올바른 길로 가기 위해 노력하십시요. 시간이 조금 더 걸리고 조금 더 돌아갈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가장 크게, 지속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비지니스의 정도이자 성공의 길입니다.”